외계어는 어떻게 만들었나?
원작 소설에서는 헵타포드(영화 속 외계인)가 내는 소리가 ‘젖은 개가 물을 털어낼 때의 소리’ 와 닮았다고 묘사된다. <컨택트>에서는 이를 ‘한숨과 딸깍거리는 소리, 고래의 노랫소리’로 표현했다. 여기에 언어학자 손데레거의 의견을 참작하여 짐승 소리와 같은 발성법을 추가하였다. 이런 소리는 인간의 성대로 낼 수 없는 소리여서, ‘말’로 소통하려 했던 루이즈(제이미 아담스)의 시도는 실패한다.
다음은 ‘글자’이다. 시나리오 작가 에릭 하이서러가 외계인의 글자를 구상했다. 원작에서는 ‘둥글둥글하게 그려진 상상 속의 사마귀가 격자무늬를 이루며 서로 매달려 있는’ 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시작도 끝도 없는 영화 속 순환의 시간개념을 반영해 원형으로 디자인되었다. 비주얼 아티스트 마틴 버트란드의 도움으로 검은 잉크를 흩뿌려 넣은 듯 아름답고 독특한 모양을 갖추었고 언어학자 제시카 쿤의 조언을 참고해 <컨택트>의 외계 문자가 완성되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파트리스 베르메트는 일종의 ‘헵타포드어 사전’을 만들기까지 했다.
<콘택트>에 나온 헵타포드의 문자는 영어나 한글과 같이 사람의 말소리를 기호로 나타낸 표음문자 (소리글자)가 아니라 중국어와 같이 뜻을 기호로 나타낸 표의문자(뜻글자)다. 이 로고그램은 문자 하나가 전체적인 뜻을 구성하므로 인간의 언어와는 다르게 그 순서가 중요하지 않다. 헵타포드의 언어가 처음과 중간, 끝이 없는 ‘비선형’ 이라는 컨셉은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자 이후 중요한 반전으로 드러난다.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이란, 사람이 사고하는 방식이 사용하는 언어의 체계와 관련 있다는 주장이다. 즉,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고 사고가 언어를 만든다.” 는 것이다. <컨택트>에서는 외계인의 언어를 익힘으로써 그들의 비선형적 시간 개념을 얻게 되는 과정으로 적용된다.
언어학자들이 말하는 <컨택트>
언어학자 베티 버너는 VOX 와의 인터뷰를 통해 루이즈의 영화 속 시도들이 실제 언어학자들이 현장 연구를 제대로 표현했다고 말한다. 팔이나 다리를 가리키며 ‘팔’ 과 ‘다리’ 를 뜻하는 그들의 언어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식인데, 이렇게 어휘 목록을 차근차근 늘려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굉장히 전문 분야의 지식 같지만, 실은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말을 배울 때 겪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루이즈야. 너는 뭐라고 부르니?” 와 같은 영화 속 질문들도 마찬가지다.
<컨택트>는 마야 언어와 퀘벡의 미그맥(Migmaq) 언어를 연구했던 언어학자 제시카 쿤(Jessica Coon)의 도움을 받았다. 제작진은 루이즈의 연구실을 사실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쿤의 맥길 대학 연구실에 찾아가 수십 장의 사진을 찍고 책장을 통째로 빌리는 등 민폐 아닌 민폐를 끼쳤다. 심지어 그녀가 현장에서 사용하는 가방이 무엇인지 조사할 정도로 집요했다고. 쿤이 제작진이 보낸 외계인 문자 로고그램을 보고 연구한 필기본이 루이즈의 연구 노트로 작품에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언어학자 루이즈를 연기한 에이미 아담스는 제시카 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언어학자의 삶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컨택트>는 언어학자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도 포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언어학자는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으며, 각종 언어를 통역하는 일을 한다고 오해하는 부분이다. <컨택트>에선 웨버(포레스트 휘태커)가 루이즈에게 중국어를 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있다. 제시카 쿤은 이에 대해 언어학자는 언어 그 자체에 대한 연구이며, 통번역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언어학을 과학의 한 분야로 그려낸 <컨택트>에 대한 언어학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다만, 영화 속 루이즈가 사는 호숫가 저택에 대해 ‘그만한 장소에 살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버는 언어학자는 드물다’ 는 씁쓸한 멘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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