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계속....
이 인식의 정도는 상대가 가진 영감의 크기와 비례한다. 또 그들과 접촉하는 빈도와도 관계있다. 영매 일행의 영감은 말할 것도 없고, 엄마가 처음 들은 소리가 소년의 울음 소리다. 소년은 초반부터 딸과 말다툼을 할 정도로 서로를 생생하게느낀다. 영매 노파를 포함해 사람은 아무도 유령을 보지 못하는데, 유일하게 소년만 유령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순수하거나 영감이 강한 아이다. 딸이 엄마보다 먼저, 사람을 본 이유는 신념과 편견의 차이 때문이다. 성경의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때문에 엄마에겐 ‘다른 존재’에 대한 강한 편견이 생겼다. 반대로 딸은 처음부터 성경의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다. 계속된 기현상 때문에 신념이 흐트러진 엄마는 점점 더 사람을 잘 감지하게 된다. 벌써 수십년 간 사람과 공존해 온, 경험 많은 하인들이 딸처럼 사람을 본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된다.
<디 아더스>라는 제목은 나와 다른 존재인 ‘타자(他者)’를 의미한다. 영화는 ‘타자’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과 경계심이 편견에서 비롯된다고 얘기한다. <디 아더스>의 엄마는 신앙 때문에 딸이 말하는 진실을 계속 외면했다. 유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던 그녀가 유령의 가능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자, 점차 ‘타자’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타자’는 두려운 존재여서 노파를 향해 달려든다. 하지만 그녀가 때린 것은 ‘타자’가 아니라, 분신과도 같은 딸이었음이 드러났다. 하인들이 유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에게는 그 방에 모인 모든 ‘타자’가 보였고, 영매와 딸의 대화를 통해 줄곳 외면해온 진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녀가 자신을 ‘타자’와 구별짓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그들은 죽었고, 나는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결국 대면한 진실은, 그녀 자신이 죽은 존재, 즉 ‘타자’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성별, 피부색, 성적 취향, 출신 지역, 이념 등 여러 가지 편견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을 구분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나와 ‘타자’를 구별짓는 차이점은 언제든 나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내가 ‘타자’를 두려워하고 배척하는 것을 정당화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하녀는 이렇게 얘기한다. “세상에는 죽은 자와 산 자가 섞여 사는 지도 모른다. 우리는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엄마가 딸의 말을 거짓이라일축하고 유령 얘기를 금한 것처럼, 진실을 함구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비타협적인 단절과 관계의 차단은 아무것도 해결 못한다.
영화에서 엄마가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신앙이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 믿었던 (사후)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깨달아 간다. 감독은 배타적인 방식으로 존속해 온 기독교가 과연 옳았는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그렇다고 아메나바르 감독은 기독교가 아예 부당하다거나 무의미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가 보다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디 아더스>의 오프닝은 엄마의 나래이션으로 창세기의 첫부분을 요약한다. “아주 오래 전, 7일간있었던 일이야.” 영화는 하인들이 도착한 날부터 7일간 벌어지는 이야기다. “처음엔 세상에 아무 것도 없었어. 해, 달, 별, 흙, 동물, 식물 등등 아무 것도 없었고, 오직 신만 존재하셨단다. 그러다가 신이 모든 걸 창조하셨지, 그리고 또...” 여기서대사가 끝나면서 동시에 제목이 나타난다. 의미를 이으면 “신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 밖의 것들(타자들)도 창조하셨다.“가 된다. 기독교가 배척해 온 모든 것들도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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