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에서 계속
<디 아더스>가 전하는 또 다른 메시지는, 반전(反戰)이다. 이 영화는 2차대전에 휩쓸린 한 가족의 비극을 다룬 이야기다. 영화의 배경이 된 채널 군도는 2차대전 당시 독일이 점령했던 유일한 영국 영토다. 영국보다는 프랑스 해변에 훨씬 가까이 위치한 곳이라 독일군에게 쉽게 빼앗길 곳이었고, 영국 본토 방어에 유리한 점도 딱히 없었다. 결국 1940년 6월 영국군은 채널 군도에서 자국 군대를 철수시켰고, 2주 뒤 무혈 입성한 독일군은 채널 군도 전체에 걸쳐 2만 명이 넘는 병력을 배치했다. 하지만 이곳은 영국군의 판단대로 전세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에도 굳이 탈환할 필요조차 없어 단지 보급 선로만 끊어 고립시키는 것으로 충분했다. 결국 채널 군도는 나치패망 직후인 1945년 5월까지도 독일군 점령상태에 놓여 있었다.
대저택을 소유한 귀족 남편은 영국의 전통에 따라 솔선수범하여 전쟁에 나섰다. 아무리 희귀병에 걸린 자녀라도 그의 의무감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남편을 둔 엄마로써는 섬의 일반인 주민들보다 더 큰 위기감을 나치 점령군에게느꼈을 것이다. 평소에도 편두통 때문에 소리에 예민하게 굴던 엄마다. 독일군이 섬을 점령했을 때, 엄마의 과잉 반응이비극을 빚어내었다. 엄마는 들키는 것을 우려해 아이들이 소리를 내지 못하게 입을 틀어 막았다가 아이들을 죽게 하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자신도 자살했다. 그리고 남편도 전사하고 말았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은 어디로 가는지 아이들이 묻는다. 엄마는 좋은 편, 나쁜 편에 따라 다르다고 대답한다. 아이들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다시 묻는다. “누가 좋은 편이고 누가 나쁜 편인지는 어떻게 구분해요?” 전쟁에 좋은 죽음, 나쁜 죽음이있을 리 없다. 적과 아군을 구별하는 것 또한 타자를 배척하는 일이다. 엄마의 대답은 어리석다. “너희는 전쟁터 안 가. 걱정 마.” 이에 대한 아이의 대답은 “어디에도 못 가잖아요.”이다. 전쟁터에 가지 않았어도 아이들은 죽고 말았다. 대화가침입자 얘기로 이어지자, 말문이 막힌 엄마는 아이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화가 난 아이가 숨을 몰아쉬자 엄마는 그렇게 숨소리 내지 말라고 화를 낸다. ‘그 날’의 비극이 연상되는 섬뜩한 장면이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디 아더스>는 상당히 정교한 각본과 연출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에는 누가 죽는 장면이 한번도 안나온다. 시체는 사진으로만 보여진다. 하지만 죽음의 두려움에 대한 영화다. 영화에는 피가 딱 한방울 나온다. 바느질 하던 엄마가 손가락을 찔릴 때인데, 사실 피는 보이지도 않는다. 영화에서 CG가 쓰인 것은 엄마가 영매들의종이를 찢어버리는 장면 뿐이다. 그 밖에 가장 공들인 특수효과는 자욱한 안개가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령이 나오는 집을 그린 다른 공포영화들 못지 않게 섬뜩하고 기발한 순간들이 적지 않다.
한마디로 <디 아더스>는 볼거리들을 보여주지 않는 영화다. 심지어 설정상 조명도 매우 제한적이다. 그런데 그 선택이오히려 더 묵직한 공포를 전달한다. 섬이라는 공간, 안갯속에 파묻힌 저택, 50개나 되는 문과 15개나 되는 열쇠, 안개, 정전, 그리고 실어증까지 많은 요소가 폐쇄성, 고립감을 강조한다. 그 와중에 커튼을 닫고 모든 문을 잠그는 엄마는 혼란을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커튼이 사라지고 문 너머의 문들이 모두 열리고 난 다음에야 그녀는 한 걸음씩 진실에 다가갔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면서 결말의 반전, <식스 센스>와의 유사성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너무나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 대부분의 대사와 연출이 중의적이다. 반전을 모르고 볼 때와 알고 볼 때 정 반대의 해석으로 읽힌다. 이처럼 처음 볼 때 보다, 두 번째, 세 번째 볼 때 더 풍족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이런 영화를 우리는 걸작이라고 부른다.
이미지=영화 ‘디 아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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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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