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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교실

불끄고 봐야 진짜 꿀잼인 공포영화 [디센트]

by 꿀마요 2021. 12. 2.

여름이 왔다. 열대야를 보내는 데 등골 서늘해지는 공포영화만 한 것이 없다. 오늘 소개해드릴 공포영화는 영국이 낳은 21세기 호러의 걸작 [디센트]다.

이 영화는 반드시 불을 끄고 보기를 권한다. 미지의 동굴 탐험 중에 고립된 6명의 여성 모험가 친구들. 그녀들이 그 동굴 속 미로에서 겪는 공포는, 완벽한 어둠으로 화면의 경계를 지워버린 촬영 콘셉트에 의해 극대화된다. 많은 영화가 더 많은 시각적 정보를 위해 가로로 긴 시네마 스코프나 압도적인 아이맥스 화면을 채택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대부분 장면에서 화면의 반 이상을 암흑으로 채운다. 랜턴, 조명탄, 야광봉, 캠코더 적외선모드 정도로 제한된 조명이 비추는 것은 바로 옆 동료와 발치의 좁은 통로뿐이다. 사방을 옥죄는 나머지의 어둠을 공유함으로써, 관객은 캐릭터와의 심리적 공감뿐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같은 공간에 갇히는 체험을 하게 된다. ‘탈수증세, 방향감각 상실, 폐소공포, 공황상태, 망상, 환각, 시각과 청각 이상 등을 유발할 수 있다.’ 탐험이 시작되기 전 한 멤버가 동료들에게 주의시키는 이 대사는 자신들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적용된다. 문제는 이 영화가 진짜 공포의 대상을 아직도 감춰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러닝타임 절반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식인 괴물 '크롤러'들이 바로 그것이다. 골룸 또는 오크를 닮은 이 흉측하고 잔인한 것들이 느닷없이 나타나 홀리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장르 자체가 바뀐다. 같은 제작사가 만든 고문 장르의 걸작 [쏘우]나 [호스텔] 등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이 영화도 충분히 많은 피와 살점이 난무한다. 이제까지의 폐소공포는 저 육식동물들에게 처참하게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비하면 사치스럽다. 호흡 곤란? 들키지 않으려면 숨소리를 스스로 죽여야 한다.

이쯤 되면 고립과 생존이라는 흔한 주제에 여러 장애물과 잔인한 장면들을 순서대로 배치한 단순한 공포영화 같다. 크롤러들은 별다른 복선 없이 갑작스레 나타나고, 점점 여전사의 면모를 드러내는 주인공과 이들의 혈투가 고조되면서 결말에 이른다. 재난영화 장르와 [에일리언] 같은 살인괴물 장르를 반반 이어 붙인 안일한 영화라는 혐의도 타당하다. 하지만 괴물 이전에 여섯 캐릭터 간의 관계를 놓치지 않고 영화를 봤다면, 이 영화의 드라마는 상당히 정교하다. 주된 배경인 동굴에 첫발을 딛기 전까지 20분이나 할애된 서브플롯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면 괴물의 인간 사냥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 가득하며,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어둠'이나 '괴물'을 암시하는 제목이 아니라 '하강'이라고 해석되는 제목인지도 수긍할 수 있다.

 여섯 친구는 오랫동안 잘 알아 왔고 이전에도 자주 모험을 함께한 동료들이다. 심지어 그들 중 둘은 자매이고 둘은 사제지간에 가깝다. 통로가 무너져버리고, 동굴에 영영 갇혀버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서로 다독이고 협력하며 나아간다. 두려움의 대상이 막연할 때는 이성에서 비롯된 신뢰로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갑작스레 펼쳐진 살육의 공포는 너무 생생하고 강렬하다. 극단적인 공포에서 비롯된 이기심이 그들의 도덕성을 추락시키기 시작한다. 전날엔 가벼운 농담처럼 놀려대던 서로의 면면이 하나씩 갈등의 요소로 불거지고 끝내 모두를 파멸시킨다.

패닉 때문에 실수로 베스를 찌른 주노는 도움을 바라는 그녀를 버려두고 달아난다. 레베카와 샘은 자신들을 찾아 헤매는 주노의 외침이 들리자, 크롤러들이 그 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샘은 자신을 과잉보호하던 언니 레베카에 대한 열등감에 절벽에서 무모한 시도를 하다가 죽고 만다. 주인공인 사라는 가장 극적으로 변한다. 마지막 긴박한 순간에 사라는 주노에게 죽은 남편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묻는다. 떼로 몰려드는 크롤러들의 소리보다 삼각관계의 대척점에 선 두 여자의 감정 충돌이 더 긴장감 넘친다. 생존의 마지막 기로에서 사라는 주노와 협력하는 대신 크롤러들에게 제물로 바치고 혼자 달아난다.

이 영화의 엔딩은 독특한데, 사라가 일단 혼자 탈출에 성공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여전히 동굴 안에 갇힌 채 크롤러들이 몰려오는 소리로 끝나는 것이다. 이는 닐 마샬 감독이 편집을 위해 각기 다른 버전으로 찍은 두 가지 엔딩을 단순히 나란히 붙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탈출에 성공한 장면 이후를 보여주지 않는 버전으로 개봉했고, 우리나라에선 두 가지가 다 담긴 버전으로 개봉했었다. 개봉 당시 이 엔딩의 해석을 두고 팬들의 논란이 얼마나 열렬했던지 첫 주 주말 동안 홈페이지가 세 번이나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앞서 말한 관점에서 해석해보자면, 극단적인 상황에서 친구를 살해하다시피 한 주인공에게 면죄부를 줘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감독의 딜레마를 고스란히 드러낸 엔딩인지도 모른다.


글쓴이 윤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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