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상이라는 배우 '태양은 가득히'

MBC의 인기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농담입니다~'하며 너스레를 떨던 모습을 떠올리면 아무리 잘생겨도 이렇게 심한 장난은 도저히 못 참겠다는 생각부터 들게 하던 윤계상이다.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장난기 뚝뚝 떨어지는 표정으로 약을 올리는데, 참다못한 박하선에게 된통 당하는 장면이 나올 때면 통쾌할 지경이었다. 어쩌면 윤계상이라는 사람 자체가 저렇게 허허실실 장난기 가득한 남자는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들어맞았던 캐릭터다. 
 

태양은 가득히

그런데 윤계상의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면, 상당히 무겁고 진지한 역할을 꾸준히 해온 배우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하이킥에서 맡았던 장난기 많지만 속은 따뜻한 의사역이나 <최고의 사랑>에서 역시 흠잡을 데 없이 훈훈한 한의원 원장으로 나왔던 이미지가 강하겠지만, 오히려 영화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전혀 다르다. 맨몸으로 휴전선을 넘으며 피투성이가 되어도 굳게 입을 다물고 한 여자를 지켜내는 <풍산개>에서의 상남자 '풍산' 역이랄지, 함께 주연을 맡았던 하정우에게 절대 밀리지 않았던 <비스티 보이즈>에서의 몰락하는 청춘이랄지, 그는 분명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진작에 떼고도 남았을 배우다.

 

태양은 가득히

  그런 그가 이번에 KBS 월화드라마 <태양은 가득히>를 통해 지독한 멜로의 주인공으로 돌아왔다. 월화 저녁 시간에 미리부터 자리 잡고 있던 <기황후>의 기세에 조용한 시작을 알렸지만, 회마다 그가 보여주는 흡입력 있고 진지한 정극 연기는 이미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세로(윤계상 분)는 타고 난 사기꾼인 아버지로 인해 파란만장한 유년기를 겪었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착한 청년이다. 노력 끝에 외무고시에 합격했으나, 우연히 목격한 한 남자의 죽음 때문에 아버지와 자신의 삶을 한 번에 잃는다. 윤계상은 따뜻하고 웃음 많던 청년 정세로와 사건 이후 심장까지 얼려버릴 듯 차가워진 눈빛으로 변해버린 채 복수를 다짐하는 정세로를 완벽하게 연기한다. 

태양은 가득히

사실상 <태양은 가득히>는 윤계상이 연기하는 정세로가 모든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구조라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과 자신의 누명으로 인해 타오르는 복수심으로 접근했지만, 한영원(한지혜 분)에 대한 감정이 증오에서 사랑으로 바뀌며 혼란스러움에 힘들어하는 모습은 여성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어찌 보면 뻔한 스토리일지 몰라도 그 안에 촘촘히 얽혀있는 집안의 비밀과 각자의 목적이 다른 주변 캐릭터들 사이에서 만들어내는 불안한 사건들이 이야기의 디테일을 만들어 간다. 

그러니 배우 윤계상으로써는 <태양은 가득히>가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연기 잘하는 배우가 아닌, 별다른 수식이 필요없는 배우로서 대중들에게 각인될 수 있는 작품을 만난 것이다. 그러므로 더더욱 지금까지의 저조한 시청률이 안타깝다. 이 드라마가 비운의 명작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지 = KBS2

글쓴이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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