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과 에이미는 길을 잃는다.
설상가상으로 자동차마저 고장이 나버렸다.
연속된 불행이 마치 소통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그들의 관계같아서 기분은 더 어둡기만하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 이후 서로의 상처를 보듬을 수 없었던 그들에게 남은 방법은 오직 이혼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헤매다 낡은 모텔을 발견했다. TV에서 들려오는 비명, 불쾌한 지배인의 태도에 에이미는 불길함을 느끼지만, 지친 데이빗의 고집에 하룻밤을 머물기로 한다. 모텔방 역시 형편없기는 마찬가. 커다란 바퀴벌레에 녹물, 더러운 침대시트 그리고 옆방의 불쾌한 소음에 신경이 날카로워지지만 해가 뜰 때까지 몇 시간만 버티기로 마음먹는다. 데이빗은 시간을 때울 생각에 비디오를 재생시킨다. 처음엔 조잡한 B급 공포영화 같았다. 하지만 영화를 살펴보던 그의 얼굴은 점점 굳어진다. 그 영상은 실제 살해 장면을 찍은 스너프 필름(Snuff Film)이었고, 바로 그들이 머무는 방이 촬영 장소였던 것이다.
방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는 이미 촬영이 되고 있었다. 그때야 이 모텔이 손님들을 상대로 스너프 필름을 제작하는 곳이라는 걸 깨달은 에이미와 데이빗은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폐쇄된 모텔의 탈출구는 보이지 않고,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들은 그런 그들의 공포를 즐기듯 촬영하고 있다. 복면쓴 살인마들은 천천히 그들에게 접근해가고, 데이빗과 에이미는 함께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영화 <베이컨시>는 외딴 모텔에서 스너프 필름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탈출을 시도하는 부부의 이야기이다.서로를 지키려는 부부의 관계에 더 중점을 두고 있고 특별한 반전 없이 흘러가는 작품이라서 다소 밋밋한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헝가리의 지하세계를 다룬 데뷔작 <컨트롤>로 칸 영화제에서 수상했던 님로드 앤탈은 이 영화에서도 자신의 특기를 충분히 보여주었다.한정된 공간 안에서 사운드와 캐릭터들의 리앤션만으로도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연출이 일품이다.
데이빗과 에이미 역을 맡은 케이트 베킨세일과 루크 윌슨 또한 애증이 뒤얽힌 부부의 모습을 매끄럽게 연기해낸다. 특히 <언더월드>의 원조 걸크러쉬여전사였던 케이트 베킨세일은 두려움에 비명만 내지르는 여주인공에 머물지 않고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준다.
고문, 살인, 강간 등의 모습을 담아 은밀히 유통하는 ‘스너프 필름(Snuff Film)’이란 단어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연쇄 살인마인 찰스 맨슨의 가족을 다룬 에드 샌더스의 책, <더 패밀리>에서부터라고 한다. 러시아 마피아들이 제작했다는 설이나 스너프 필름으로 오해받았던 페이크 다큐멘터리 소동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스너프 필름은 관음증의 끝에 있는 매우 심각한 범죄다. 그리고 우리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몰카’와 ‘도촬’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작년 한해 접수된 관련 사건이 7325건에 이르며, 이 숫자는 매년 두배씩 늘고 있다고 한다. 모텔에 갇힌 데이빗과 에이미처럼 지금도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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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앤건 = 글: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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