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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 테크놀로지

3D 프린터로 만든 스톱애니메이션 '박스트롤'

by 꿀마요 2021. 11. 29.

3D 프린터를 활용한 스톱애니메이션 [박스트롤]


최신 영화제작 기법들을 살펴보고, 영화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열두 번째 이야기는 스톱애니메이션의 아놀로그한 감성과 최신 3D 프린팅 기술의 장점이 잘 접목된 [박스트롤] 에 관한 이야기이다.

[박스트롤]은 요즘 가장 주목받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라이카 스튜디오 (Laika Studio)의 세 번째 작품이다. 라이카 스튜디오는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시에 위치한 작은 스톱모션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사로 이번 작품에서도 전작인 [코렐라인: 비밀의 문]과 [파라노만]에서 보여줬던 기묘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스톱모션’ 기법이란 정지된 물체를 조금씩 이동하여 장면 하나하나를 사진으로 촬영한 후 그 사진들을 순서대로 이어붙여 촬영하는 전통적인 특수기법이다. 스톱모션 기법이 활용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제78회 아카데미 애니메이션상 수상작인 [월래스와 그로밋]과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등이 있다. (사실 팀 버튼 감독은 제작을 맡았고 [코렐라인: 비밀의 문]의 연출을 맡기도 한 헨리 셀릭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영화 속 배경과 캐릭터를 수작업으로 직접 제작하고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사람이 직접 조금씩 움직이면서 제작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기도하다. 

그러므로 제작진은 캐릭터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주로 몸에 딱 붙는 옷을 선호하고 머리숱이나 털(?)이 많지 않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주인공 잭 스켈링톤은 머리카락이 아예 없으며, 심지어 눈동자도 없는 검은 눈을 가지고 있다. [월래스와 그로밋] 시리즈의 주인공 월래스 역시 머리숱이 하나도 없고 강아지인 그로밋도 짧게 정리한 털 덕분에 거의 피부처럼 보인다. 머리카락 하나, 옷자락의 움직임 하나까지 완벽히 제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박스트롤]의 캐릭터들은 기존 작품들보다 풍성한 헤어스타일을 자랑하지만, 역시 움직임은 제한적이다.

캐릭터의 머리를 한올 한올 심고 있는 제작진  
세트에 직접 들어가 캐릭터의 위치와 포즈를 조정 중인 제작진  


그럼에도 [박스트롤]은 기존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보다 확실히 진일보 한 점이 있다. 3D 프린팅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제작과정을 많이 간소화했다는 것이다. 사실 현재까지의 3D 프린팅 기술은 같은 모델을 대량생산하기엔 시간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약간씩 다른 모델이 1개씩 필요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서는 단점이 아니다. 

제작진은 우선 수작업으로 캐릭터의 기본 얼굴을 완성했다. 이 모델을 3D 스캐너로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인식시킨 후, 다시 토포곤 (TopoGon), 마야 (Maya), 지브러쉬 (ZBrush) 등의 3D 모델링 툴을 활용하여 조금씩 다른 3D 표정 데이터를 다양하게 만든다. 이렇게 생성된 다양한 표정 데이터를 3D 프린터로 실물을 1개씩 생산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박스트롤]의 캐릭터들은 기존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보다 훨씬 풍부한 표정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 

수작업으로 캐릭터 원형 제작



3D 모델링 툴을 활용하여 캐릭터의 표정 데이터 제작
얼굴 모형을 제작 중인 3D 프린터  
초벌 굽기 후 채색을 기다리고 있는 다양한 얼굴 모형   

수작업으로 배경과 캐릭터를 직접 만들어서 활용하는 스톱모션 기법은 분명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날로그하고 키치한 질감을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과정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박스트롤]은 기존의 방식과 동일한 수작업으로 사실적이고 정교한 표현을 하는 동시에 3D 모델링과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여 이런 단점을 극복했다. 전통적인 스톱모션 기법의 장점과 첨단 3D 기술의 장점이 전략적으로 잘 만난 것이다. 

이와 유사한 작업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이 ‘계단 위의 곰 (Bears on Stairs)’이다. 역시나 3D 프린팅을 활용하여 스톱모션에서는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매우 부드러운 움직임을 표현했다. 

>> 계단 위의 곰 (Bears on Stairs)
https://vimeo.com/91711011

컨셉아트 단계의 2D 그래픽을 활용한 앤딩 크래딧  



[박스트롤]을 감상하실 때, 엔딩 크래딧 이후의 보너스 영상을 꼭 감상하시기를 권한다. 캐릭터와 캐릭터를 조작하고 있는 제작진의 모습이 한 화면에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를 위해 들인 스탭들의 다양한 노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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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유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