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스파이 이야기냐고 할 수도 있다. 이번엔 좀 다르다. KBS가 새 금요 미니시리즈로 선보인 가족첩보스릴러 <스파이>는 스파이라는 소재가 연상시키는 만화적인 상상력이나 판타지에 가까운 코믹함과는 거리가 멀다. 크게 로맨스에도 치우치지 않으며 묘하게 사실적인 드라마를 전개하고 있다.
<스파이>는 영국 가디언지에 '2014년 당신이 놓쳐선 안 되는 세계 드라마 6편'에 선정된 이스라엘 드라마 <마이스(MICE)>가 원작이다. 완성도와 작품성을 인정받아 미국 NBC가 리메이크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KBS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금요드라마의 첫 번째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스파이>는 매주 금요일 밤에 50분 분량의 에피소드를 2회 연속 방영하는 파격적인 편성으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몰입과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제작진은 최근 ‘소재고갈’과 '막장화'로 드라마들의 전반적인 완성도에 대해 고민하던 KBS 드라마 제작국 전체의 고민을 담아 선보이는 특별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없었던 이야기가 확실하다. 북한 정부의 스파이로 활동했던 과거를 숨긴 채,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가는 혜림(배종옥 분)은 공무원인 줄 알았던 아들이 국정원 소속 현장 요원(스파이)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심지어 북한 소속 스파이 황기철(유오성 분)로부터 아들 김선우(김재중 분)를 포섭하라는 임무가 떨어지자 혼란에 빠진다. 혜림은 모든 책임을 지고 혼자 사라지려고 하지만, 기철의 포위망은 생각보다 철저하게 조여온다. 어쩔 수 없이 아들의 뒤를 쫓게 되는데, 선우의 직장동료와 애인 등 주변인들이 모두 어쩐지 수상하다.
역시 극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각각 남과 북의 스파이 신분인 엄마와 아들이다. 관록의 배우 배종옥은 평범한 주부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순간적으로 서늘해지는 눈빛을 쏜다. 악역에 있어 그 대안을 생각할 수 없는 배우 유오성과 합을 맞춘 액션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아들의 연애사 앞에서는 영락없이 대한민국 아줌마의 귀여운 면모를 보여주다가도, 임무를 수행할 때는 녹슬지 않은 첩보능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이미 여러 편의 드라마를 통해 아이돌 가수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벗어난 김재중의 변신도 눈에 띈다. 이국적인 마스크와 군더더기 없는 근육질 몸매도 반갑지만, 작품을 거듭할수록 안정적인 호흡과 자연스러운 표정을 찾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신-구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 조합을 이끌어낸 데에는 KBS 명품 콤비라 불리는 박현석 연출과 한상운 작가의 힘이 크다는 평이다. 이 둘은 KBS '드라마 스페셜'에서 <텍사스 안타>와 <완벽한 스파이>, <습지생태보고서> 등에서 완벽한 호흡으로 호평을 받았었다.
앞서 말한 대로, 스파이를 소재로 한 드라마에선 대개 코믹한 설정이나 만화적 상상력을 통해 어설픈 얼개들을 너그러이 넘어가 주곤 했다. 아니면 어렵고 복잡한 첩보극으로 빠르게 전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안에 양념처럼 비극적인 사랑을 끼워 넣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스파이>는 이미 그 작품성이 입증된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적인 가족정서를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아들을 위해 스파이로 나선 어머니의 고군분투와 그 과정에서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는 아들의 이야기가 황당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극이 전개될수록 선우 주변인들의 복잡한 관계가 얽히면서 드라마가 풍성해진다. 연속 방영되는 100분의 시간 동안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오래전부터 웰메이드 작품들을 선보여 온 ‘드라마 스페셜’팀이 미니시리즈로 옮겨와 처음으로 보여주는 작품인 만큼, 속고 속이는 갈등 속에서 서로 다른 임무와 함께 어떻게 가족의 화해를 그려낼지 더욱 기대된다.
이미지=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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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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