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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교실

'호러의 오랜 미래'를 보았다 [헬레이저]

by 꿀마요 2021. 12. 2.

오늘 소개할 작품은 핀헤드라는 걸출한 캐릭터를 탄생시킨 영국의 고딕 호러 [헬레이져] 이다.

쾌락과 고통은 반대의 개념이라는 것이 상식인 것 같은데, 그 둘을 동시에 탐닉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도-마조히즘도 고통에서 쾌락을 추구한다는 개념이다. 피어싱이나 문신에 중독되는 사람들도 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헬레이저]에는 핀헤드와 ‘수도승’들이 나온다. 그들은 자신들의 제물을 통해 이 쾌락과 고통의 극단을 탐구한다. 자신들의 차원으로 데려간 인간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으면서, 궁극의 고통을 견딜 때 최고의 쾌락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영화는 극도의 쾌락을 탐닉하던 프랭크라는 남자가 그 쾌락과 고통이 공존하는 차원으로 가는 상자를 구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매력 넘치는 짐승남이면서, 도덕성이 결여된 남자로, 자기 형과 내일 결혼할 여자인 줄리아를 망설임 없이 유혹하는 인간이다. 그가 의식을 치르듯 상자를 열자 저 기괴한 수도승들이 나타나고, 갈고리 같은 온갖 고문 도구로 그의 육체를 산산조각낸다. 그리고 그 흩어진 시체는 아마도 지옥에 유배된다. 그가 죽어간 공간에 피가 떨어지자, 육신 일부가 지옥을 떠나 부활한다. 그가 근육과 혈관 등을 차례차례 갖춰가며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려면, 더 많은 피가 필요하다. 이 과정을 프랭크의 형과 예정대로 결혼했지만, 프랭크를 통해 느낀 극도의 황홀감을 잊지 못하는 줄리아가 돕는다. 남자들을 유혹해 데려와서는 살해하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성욕에서 비롯된 왜곡된 헌신이 계속된다. 

    
[헬레이저]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핀헤드였다. 그와 다른 수도승들의 기괴한 디자인과 세계관은 큰 화제가 되었고, 이후 많은 영화나 여타 장르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미우라 켄타로의 만화 [베르세르크]는 [헬레이져]의 캐릭터나 철학적 배경 등을 다양하게 참고했다. [헬레이저] 시리즈는 모두 아홉 편이 나왔는데, 모든 메인 포스터가 핀헤드 중심이었다. 그래서 [헬레이저]를 아직 못 본 사람이라면, 핀헤드가 영웅적 주인공이거나 메인 악당 역할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 사실 1편에서 이 수도승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다. 래리와 줄리아, 프랭크, 커스티 등 한 가족이 막장으로 치닫게 되는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하고, 클라이맥스를 좀 더 다층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지만, [헬레이저] 1편은 확실히 쫓기는 한 남자와 그를 돕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는 정부의 이야기다.

 

  
스티븐 킹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호러 문학 작가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스티븐 킹이 “호러의 미래를 보았다.”며 극찬했던 작가가 바로 [헬레이저]의 감독이자 원작자인 클라이브 바커다. 클라이브 바커는 자기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두 편의 영화에 너무 실망해서 직접 [헬레이저]를 연출했다. 그리고 영화는 제작비 대비 스무 배의 수익을 내며 대성공을 거둔다.

 

     
평단도 대체로 우호적이었지만, 부정적인 평가도 많았다. 비판은 주로 감독의 미숙한 연출력, 그리고 엉성한 플롯과 평면적인 캐릭터에 대한 것이었다. 완성도 높은 분장에 비해 조악하기 짝이 없는 공간 연출과 특수효과가 많이 지적된 부분이다. 유명 영화 평론가인 시카고 선 타임즈의 로저 에버트는 ‘위트나 스타일, 논리라곤 없는’ 이 영화의 진정한 공포는 ‘상상력의 파산’이라고 혹평하며, 별점 반 개(5개 만점)를 주었다. 게다가 스티븐 킹의 저 발언을 인용하면서, “스티븐 킹이 호러의 미래는 봤는지 몰라도 [헬레이저]는 보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며 비꼬았다. 그들의 지적은 어느 정도 맞지만, 공포영화에는 아카데믹한 완성도나 노련한 연출력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래서 팬들은 이 영화를 공포영화 장르의 걸작 중 걸작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980년대 후반 공포영화 시장은 미국의 10대 대상의 슬래셔 영화, 그것도 [나이트메어], [13일의 금요일]같은 시리즈물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영국의 호러장르 스타작가가, 고딕 호러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성인 대상의, 초현실주의 공포영화를 들고 나왔다. 영화를 둘러싼 이러한 조건들만으로도 신선했다. 과연 스티븐 킹이 인정한 ‘호러의 미래’는, 낯설고 독창적인 상상력을 맘껏 발휘했다. [헬레이져]의 성공으로 가장 덕을 본 것은, 클라이브 바커 본인이나 제작사보다도, 새로운 공포영화의 출현을 목격할 수 있었던 공포영화 애호가들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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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지원